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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쑤♪ 오늘 남이섬에선 "남이장군 도당굿"이 열렸어요 
 

 

▼남이장군 도당굿이란?(Korean/English)

‘남이장군 도당굿 (南怡將軍 都堂祭)’ 남이섬서 성대하게 복원
 
- 10일 남이장군묘 앞 만남이광장서… 당주에 만신 이명옥 초청
 
천혜의 자연을 간직한 생태문화관광지 남이섬에서 ‘남이장군 도당굿’이 10일 옛 방식 그대로 열렸다.
 
남이장군 도당굿은 남이(1441∼1468)의 원혼을 달래고 기개와 충절을 기리기 위해 열리는 전통방식의 굿판으로 ‘남이장군 사당굿’을 남이섬에서 성대하게 복원했다.
 
남이장군 사당굿 보존회가 주관하고 남이섬이 후원하는 이번 행사는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20호 남이장군 사당굿의 예능보유자인 만신 이명옥(81)이 당주를 맡아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진행됐다.
 
2003년부터 시작된 남이장군 도당굿은 남이섬의 평안과 마을 주민의 화합을 위한 하나의 축제이자, 남이섬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에게 한국 고유 민속 문화인 ‘굿’을 보여주는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그 문화적 중요성과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전국 각지의 전통 민속 축제 및 해외에서도 초청을 받아 행해지고 있어 그 의미를 더한다.
 
한편, 남이섬은 북쪽 언덕 돌무더기에 남이장군이 묻혀있다는 오랜 민간전승에 기인하여 예부터 남이섬으로 불렸다. 남이장군묘는 남이섬 관광지를 조성할 때 추모비를 세워 조성한 묘이다. 추모 묘비는 노산 이은상 선생이 글을 짓고 김충현 선생이 글씨를 썼다.
 
남이섬의 관계자는 “남이장군 도당굿은 우리 민족의 정서가 함축된 굿으로 많은 관광객에게 우리 역사를 바탕으로 한 전통예술의 한 분야를 소개하는 행사로 자리매김해 그 의미가 크다"라고 말했다.
 
한편, 남이섬으로 가는 방법은 승용차 이용 시 내비게이션 주소검색에서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북한강변로 1024를 검색하거나 명칭 검색에서 남이섬 매표소/남이섬 선착장을 찍으면 된다. 대중교통 이용 시 남이섬에서 가장 가까운 전철역(기차)과 버스터미널은 가평역(경춘선)과 가평시외버스터미널이며 둘 다 2km 거리에 있어 택시 이용 시 약 4천원이 든다.
 
도당(都堂) :
한반도 중부 지역의 마을신 등을 모시는 제당, 또는 도당굿에서 모시는 마을신. 도당은 마을민을 수호하고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관장하면서 마을민의 대동단결을 모색하며, 병환 퇴치를 관장한다. 굿거리에서 나타나는 도당은 굿을 하는 집이 속해 있는 마을의 수호신 기능을 한다. 물론 이때는 지역신(地域神)뿐 아니라 팔도의 산신을 모두 모시기도 한다. 이로 보아 도당은 지역신으로 정의된다.

Korean Traditional Performing Art of Shaman - “GOOD(GUT)”,
in remembrance of the General NAMI
 
* Venue: The tomb of the General NAMI, Nami Island
* Time: 10 am – 3 pm, May 10, 2018
 
"A ritual that shaman appeases (and exorcises) spirits by singing and dancing. People usually ask shamans to perform GOOD(GUT)s when they want to prevent misfortune in their household."
 
Nami Island is home to the tomb of General Nami (1441-1468) a valiant, yet controversial figure from Joseon dynasty Korea. General Nami was of royal blood: his mother was the fourth daughter of King Taejong (r. 1400-1418) and his father was a member of the Nam clan from Ui-ryeong. He later married the daughter of Kwon Ram, a high government official.
 
Famous since childhood for his bravery, in 1457 at the tender age of 17 he took first place in elaborately conducted military service examinations. During these examinations the candidates were tested on Confucian and military classics and martial arts such as archery, horseback riding, and lancing. 
 
General Nami’s brilliance attracted the patronage of the King Sejo (r. 1455-1468). His reputation was further enhanced when in 1467 his expeditionary force of 30,000 troops forcefully put down a large-scale uprising in the northeastern province ignited by Lee Si-ae, the magistrate of Hoeryeong. General Nami was honored officially as a Merit Subject and given the title of Minister of National Defense (Byeongjo Panseo) at the age of 27. Later he successfully drove back the Yeojin tribes, which helped to secure Korea’s northern borders. Unfortunately for General Nami his great patron, King Sejo, died in September 1468 and after the enthronement of the new ruler, King Yejong, General Nami was falsely denounced as a traitor. 
 
General Nami and 25 others including his mother and his faithful retainers were executed. It was not until 1818 during the reign of King Sunjo that it was officially revealed that false evidence was used to convict General Nami. His official positions were restored and he was given the posthumous name of “Chung-mu”. 
 
I will cut the boulders of Mt. Baekdu until my sword is worn away,
I will water my horse with the waters of the Duman River until it dries up,
If a man cannot subjugate an entire nation by the age of 20,
Then no one will deem him a h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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